80년대생의 90년대생 관찰기 / <90년생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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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니썜의 독후잡담

80년대생의 90년대생 관찰기 / <90년생이 온다>

80년대생의 90년대생 관찰기  / <90년생이 온다>



직장인 친구들과 오랜만에 술자리에서 만나 회사 이야기를 할 때면 늘 이런 불만들을 들을 수 있었다.

야근 수당 없는 야근.
상사가 잘못된 업무 지시 후 책임 전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는 연차 휴가.

정말 단순하게 본다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회사가 지킬 걸 안 지키면 신고를 하든지 이직을 하면 되지 않나?’

하지만 막상 직장에 들어가면 그것이 쉽지 않다.
물론 신고를 하는 것 자체는 쉽겠지만 그 효과(?)가 미미한 데다가, 순식간에 ‘배신자’ 혹은 ‘사회생활 못하는 놈’으로 낙인이 찍혀 직장 생활이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참고 만다.
회사니까. 사회생활이니까. 돈 벌어야 하니까.
부당한 것을 참고 진득하게 회사에 남으면 그만큼 내게 돌아오는 것이 있고, 추후 이직을 하더라도 그 경력이 나의 미래를 보장해 준다.

라는 것이 여태까지 있었던 직장인들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소위 ‘90년생’이 등장했다. 나이를 불문하고 누구나 부당함과 비효율성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을 소리내어 거부하는 것이 그들이다.
부당함을 참고 견디면 인사 고과에 반영돼서 연봉 협상으로 보상받을 거라느니, 확실하지도 않은 기름 발린 말은 통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들은 회사가 자신의 미래를 책임져 준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저자 임홍택은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시도했다.
‘이해했다’라고 하면 좋은 것을 ‘이해를 시도했다’라고 표현한 것은 그가 90년생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90년생인 내가 소위 ‘꼰대’들을 배척하면서도, 나 또한 같은 ‘90년생’ 또는 ‘00년생’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듯, 저자도 감히 ‘90년생’을 이해했다고 단언할 수는 없으리라 본다.

때문에 이 책에 관한 리뷰에는 그를 향한 비난이 상당히 많다.
90년생을 다 싸잡아서 말한다는 둥, 상대적인 것을 도식적으로 풀었다는 둥

하지만 나는 그것이 비난받을 일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90년생’을 ‘요즘 것들’, ‘요즘 젊은 것들’로 비꼬지 않고 이해하려 시도하려 했다는 점에서 큰 한 걸음은 내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저런 비난을 한다는 것은,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 임홍택, <90년생이 온다>를 읽고 생각해 봄